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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1리의 왕곡마을은 강릉에서 고성방면의 7번국도로 송지호 해수욕장을 지나 좌측의 별천지가든
간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1.5km 정도 들어가면 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동족마을은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폐허화된 촌락사회를 재건했던 150년간에 형성된 것으로, 대개는
중앙에 진출한 입신양명의 가문을 중심으로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나, 왕곡마을처럼 중앙의 힘이 크게 미치지 못한 곳에서는 자생적으로 마을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왕곡은 고려말 두문공 72인중의 한사람인 함부열이 조선왕조 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으로 은거한데서 연유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을의 입지 조건을 살펴보면 이곳이 은신 피난처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수에 의하면 이 마을은 병화하입지(兵火下入地)의 협소한 분지로, 해발 200m정도의 5개의 야산(그래서 오봉마을이라고도 불림)과
하나의 커다란 호수(송지호)에 의해 외부와 차단된다. 한국전쟁 당시 고성군 일대가 최대의 격전지로 동해연안 7번 국도를 중심으로 피아간에 밀고
밀리는 '톱질 작전'으로 국도연변의 대부분의 취락이 전화를 입어 거의 파상되었는데도, 국도에서 불과 1km정도 내륙으로 들어간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도변에서 마을의 가운데로 뚫린 포장도로가 생겨서 접근이 용이하지만, 국도변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야산과 넓게
펼쳐진 송지호로 가려있어 그안에 이만한 규모의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키 어렵다.

마을의 전체적인 배치는 중앙의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마을은 마을과 논밭이 분리되어 마을내의 가옥 밀도가 높은 편이나 이곳 왕곡은 집집마다 비교적 넓은 텃밭을 가지고 있어 이웃과의
거리가 여유가 있다.
왕곡마을 가옥의 특이한 점은 앞마당이 있는 전면에 담을 두른 집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울을 따라 걷다가 어느 집에
들어갈 때 담이 없는 관계로 내가 지금 집에 들어와 있는지 아니면 그 집 뒤로 보이는 다른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있는지 정확한 집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을의 특성상 함씨의 동족촌이므로 주택 하나하나의 독립성이 그다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마을 안길과 연결되는 앞마당은 개방적인 반면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안뒤(뒷마당)은 철저히 폐쇄적이다. 우선 높은 담으로 인해 외부에서의
시선이 차단되고, 안뒤의 출입이 정지(부엌)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앞마당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또한 경사진 뒷마당은 폭이 좁고 나무가 빽빽히 심어있어 겨울의 방풍과 여름의 그늘을 제공한다. 이것은 제주지방의
안뒤와 매우 유사한데, 겨울에는 북서풍의 매서운 바람을 나무가 막아주고 여름이면 시원한 안뒤의 차가운 공기가 마루를 통해 앞마당으로 불어주어
집안은 여름내내 서늘한 공기가 떠나질 않는다. 최고의 하이테크놀로지 건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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