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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은 충청남도 아산군 송악면에 있으며, 온양 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송악으로 가는 버스(90-5번, 6번)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외암리가 나온다. 농협과 초등학교 사잇길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으면 어느덧 외암리의 다리에 다다른다.

이 마을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형성된 것은 대략 200년전이라 하며 현존하는 가옥들은 약 100년전에 지어진
것이다. 물론 이 마을이 처음 생긴 것은 오랜 옛 일이겠으나 조선중기에 들어서면서 예안 이씨의 집성촌으로 굳히며 후기에 접어들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지금의 모습을 형성하였다.
중앙관직의 관원들이 서울서 가까운 곳에 낙향저택을 꾀한 경우가 많아 이 마을의 양반주택들은 당시 주인의 관직명에 따라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교수댁' '참봉댁' '국사댁'등으로 불리었으며, 재직하던 고을명을 따서 '영암댁' '신창댁' '양성댁'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을안에는 현재 약 70호의 주택이 밀집해 있고 그 주변에는 전답이 넓게 퍼져있다. 이들 가옥중 넓은 마당과 정원을
갖춘 큰 규모의 고택은 20여호가 남아있으며 그들사이에 소작이나 자작을 하던 민가가 어우러져 있다.
이들 고택은 집의 규모가 클뿐 아니라 그 구조와 양식으로 보아서도 높은 품격의 상류주택형식을 갖추고 있어 조선후기
양반촌의 내음을 쉽게 느끼게 한다.
송악면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이 마을에 들어서면 첫째 답사객을 반기는 것은 장승과 솟대이다. 이 장승을 우로하고 다리를
건너면 외암리가 시작되는데,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이 마을의 담장이다. 마을내의 모든 가옥이 한길높이의 돌각담으로 둘러쳐져 돌담길이 온
마을에 이어졌고, 울울한 수림이 담 너머로 퍼져있어 골목길은 안온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긴다. 이 돌각담은 줄눈이나 속채움없이 막돌로만
쌓아올렸으며 그 두께가 1m에 이르는 두터운 담장이다.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양반가의 정원이다. 조선중기까지도 우리내 가옥의 마당은 '비어있음'이 멋이었다. 그러나
외암리는 주택의 형성시기나 당시 가옥주의 관료지향적인 성격이 맞물려 조선후기에 밀려들어온 서양과 일본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흔적이 주택의
정원에서 두드러진다.
설화산에서 시작되는 냇물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여 각 양반가의 마당을 지나도록 하여 정교하게 가꾼 정원과 어우러지는
연못등으로 이용하였는데 단순히 신문물을 차용한 것을 뛰어넘어 대단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영암댁의 정원이 그러한데, 아쉽게도 요즘
외암마을은 타지인에게 인색하여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잘 열어주지 않아 큰 맘을 먹고 갔더라도 담장너머로 힐끗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걸음을 돌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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