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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성 양동마을

 

   양동마을의 정식명칭인 강동면의 양동리는 경주시에서 북으로 21km, 포항에서 남서쪽으로 2km 떨어진 안강입구에 위치하며,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안강행 버스(217번 등)를 타고 양동리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버스로 약 40분이 걸리고, 하차 후 도보로 10~15분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1458년 청송의 손소가 류복하의 딸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에 들어오며 양동마을 내의 손씨가문은 시작된다. 손소는 5남 1녀를 두었는데 외동딸에게 장가를 든 이번이 처가살이를 하며 양동마을로 들어왔고, 그의 둘째 아들인 이언적이 당대의 대사상가로 추앙받으며 마을내의 이씨가문의 세력이 성장하게 된다. 그 후 손씨와 이씨는 때로는 경쟁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도우며 마을을 번창시켜 지금의 양동마을이 있도록 하였다.

   손-이 두 가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조 유수의 명문가였고, 상당한 재력을 겸비한 지주층이었다. 이들이 마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많은 소작인이 필요했고, 그래서 마을의 살림집들은 작은 규모의 초가집과 큰 규모의 기와집으로 대별된다. 이들이 모여사는 형상을 유심히 살피면, 초가집들은 산밑 골짜기에, 기와집들은 대부분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와집 가운데서도 큰 규모일수록 더 높이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입구의 대표가옥인 이씨가문의 향단과 손씨가문의 관가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양반집들이 고지대를 차지함으로써 저지대의 소작인을 거느리는 심리적인 만족을 누릴 수는 있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고지대에는 물이 없다. 풍수적으로도 우물 파기를 금기시했지만, 산 위에서 지하수를 구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은 하인에 의해 해결이 될 터이니 불편은 없었다. 그러나 양반집이 구릉 위에 앉은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무엇보다 추운 겨울에 양동엘 가보면 안다. 골짜기는 매서운 골바람이 강하게 불지만, 산 위의 양반집들에는 바람이 거의 없고, 따스한 햇살만 비친다. 골짜기로 이루어진 양동마을의 특이한 미세 기후다. 여름에는 반대로 골에서 산으로 바람이 불어 아래는 무덥지만, 산 위는 시원하다. 지형을 계층적으로 분점한 것은 심리적인 이유 뿐 아니라, 국지기후에 대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손-이씨 두 양반가문의 입지선정도 치열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는 손씨 대종가인 서백당은 안골 깊숙한 곳에 터를 잡았다. 그후에 생긴 이씨종가인 무첨당은 안골에서 산 하나를 넘은 물봉골에 자리잡았다. 두 가문의 종가가 중요한 골짜기 하나씩을 차지한 셈이다. 중요한 건물들의 입지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손씨가 정자를 세우면 이씨가 대응하는 지점에 정자를 세웠고, 이씨가 서당을 세우면 손씨 역시 경쟁적인 위치에 서당을 세웠다.

   두 가문이 벌인 건축 경쟁의 하이라이트는 양동 어귀에 자리잡은 두 집-관가정과 향단-이다. 관가정은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 분가하며 손수 지은 집으로 전하며, 대응되는 향단은 이언적이 자신의 동생 이언괄을 위해 지어준 주택이다. 이 두 주택을 비교하며 살펴보면 양동마을 내의 두 가문의 특징과 역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향단과 관가정은 양동마을의 얼굴이다.

   글 - 김봉렬교수의 '시대를 담는 그릇'에서 발췌

 

 

1. 마을 배치도

    앞으로는 설창산, 뒤로는 성주산에 기대어 앉은 양동마을은 이른바 물(勿)자 형국의 명당 중의 명당이다. 마을의 살림집들은 자연지형인 3개의 골짜기인 물봉골, 안골, 장터골에 몇 개의 영역을 형성하며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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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을 전경

    버스에서 내려 기찻길을 따라 굴다리를 지나면 양동마을이 펼쳐진다. 사진의 오른쪽이 향단이고, 초등학교 위의 산중턱 가옥이 관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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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속의 양동마을

    한국화가인 이호신씨는 양동마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양동의 설창산 자락에 형성된 마을을 맞은편의 성주산에서 바라보는 전경이란 마치 숨바꼭질을 하다 깨어나 보게 되는 옛 집의 모습으로, 백여 채의 고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옛 사람들의 숨결속으로 젖어 들게 한다. 마을의 형국이 말물(勿)자인데 각기 뼈를 이루는 산 능선 아래로 기와집이 총총하고,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길목이 활등처럼 휘고, 흰 뱀이 기어오르는 듯한 산길이 정겨워만 보인다. 마을 산너머로 펼쳐지는 안강벌은 그 옛날 풍요로웠던 마을의 영화를 웅변해 주는데, 경주에서 흘러드는 형산강이 설창봉 산줄기에 있어 서남방 역수(逆水)로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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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가정

    화려한 향단과 비교되는 절제된 아름다움과 규범적인 주택이 관가정이다. 향단과 함께 양동의 대표가옥이며, 향단이 이씨의 대표가옥이라면 관가정은 손씨의 대표가옥이다. 두 가문의 대표가옥 답게 마을어귀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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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담    장

    양동마을에는 이 마을만의 또 다른 담장이 있다. 평지가 아닌 비탈에 가옥이 있는 대부분의 가옥은 대체로 집내부 마당의 높이가 주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는 담장은 하부가 튼튼한 막돌로 축대를 형성하고 그 위에 기와로 덮은 담장이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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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첨당

    동쪽에 살림채, 서쪽에는 별채인 무첨당 그리고 그 사이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사당으로 이루어진 이씨 대종가이다. 평범한 안채에 비해 화려한 별채는 향단을 지은 이언적의 또 다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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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백당

    1458년 손소가 이 마을에 장가들면서 지은 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주택은 충청도의 맹씨행단이지만, 살림집의 전체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가옥 중에서는 서백당이 최고이다. 대문을 들어서서부터 사당까지의 공간이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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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심수정

    양동의 정자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내부공간과 상징적인 경관을 가진 정자이다. ㄱ자의 대청 삼관헌은 세그루의 고목을 바라볼 수 있어서, 또 세칸 대청으로 마을을 볼 수 있어서 삼관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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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졸정

    마을의 한복판 언덕에 위치한 양졸정에서 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반대로 마을의 대로변에서도 양졸정은 늘 눈에 띄는데, 양졸정은 이런 면에서 양동마을의 랜드마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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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향    단

    회재 이언적이 동생을 위해 지은 양동마을의 걸작이자 조선시대 가옥의 걸작인 향단은 미로와 같은 내부 동선과 일반적인 해법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배치로 답사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양동마을을 답사할 때 되도록 향단은 나중에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향단을 답사한 후에 본 다른 가옥은 눈에 차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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