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HL1YE)
십자가를 안테나로!
지난 주말에는 대구 한티 피정의 집에서 있은 ME(Marriage Encounter)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30여 쌍의 부부와 2쌍의 신부(사제)님들, 그리고 제가 참가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참가하게 되어 미처 짝(?)을 못 찾아 혼자 참가했는데, 예상대로 여러 가지로 애로 사항(?)이 많았습니다. 즉 부부 대화, 부부 마주보기, 부부 손잡고 다니기 등의 프로그램에서 말입니다.^^* 더구나 저는 첫날 각자의 배우자 소개에서 “저의 배우자는 저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라고 소개했기에 부부 대화 시간이 되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성당에 가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 중에 엉뚱하게도 얼마 전에 극장에서 예고편을 본 ‘붙어야 산다’라는 영화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영화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작은 시골 마을인 바인야드에서 살고 있는 천하의 순진남 밥과 소문난 작업남 월트. 성격도, 외모도 180도 다른 이들 형제는 바로 허리 22cm가량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이다. 선천적인 핸디캡을 천부적인 재능으로 승화시킨 이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햄버거를 만드는 ‘번개 버거’의 주인이자, 스포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이 동네 최고의 명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공유하고 있는 간의 90%가 밥에게 있기 때문에 더 빨리 늙을 수밖에 없는 월트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고, 더 늦기 전에 헐리우드로 진출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다. 밥은 월트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하지만, 3개월만 도전해 보자는 월트의 설득에 마지못해 따라 나서게 된다. 한편 헐리우드에 도착한 밥과 월트는 모텔에서 알게 된 에이프릴의 조언을 듣고 도전을 감행하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겨우 따낸 배역도 알고 보니 포르노 영화였다. 이 사실을 알고 기겁해서 촬영장을 나오다가 그들은 인기 스타 셰어에게 발탁이 된다. 하지만 셰어의 속셈은 출연하고 싶지 않은 TV 시리즈에 말도 안 되는 인물을 캐스팅함으로써 방송국으로 하여금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도록 하려던 것! 하지만 셰어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들 형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다. 그러던 중, 3년 동안 인터넷으로 사랑을 키워 오던 밥의 여자 친구가 두 사람이 샴쌍둥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밥은 큰 실연의 상처를 받게 된다. 이에 월트는 반드시 분리 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는 이야기.”
그런데 부부 대화, 즉 묵상 중에 예수님께서는 저의 이러한 분심을 너그럽게 이해하시면서 “나는 포도나무이다. 그리고 너는 그 가지이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요한 15, 1~5 참조)라는 말씀과 “과연 너는 참 포도나무인 나에게 붙어 있느냐?”라는 질문을 저에게 하셨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말씀, 즉 “목마르다”(요한 19, 28)가 바로 피정 중에 들은 부부간에 절실히 필요한 ‘느낌 대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절박한 그 느낌을 깨닫고 십자가 아래에 서서 그 고통을 함께 받아들인 성모님과 사도 요한과는 달리 저는 그 십자가에서 아주 멀리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도망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돈 키호테가 창녀 엘돈자를 덜시네아(숙녀)라고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준 것처럼 주님께서 부족한 저를 “나의 신부”라고 불러 주고 또 사랑해 주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십자 나무에 붙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십자가에서 떨어지려고 또 분리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주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붙으면 산다”라고 이 주말 피정을 통해 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랑하는 가족, 부부, 자녀,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때로는 십자가라고 생각하여 그 십자가와 떨어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하지만 은혜로운 사순 시기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에 우리를 다시 초대하고 계십니다. “붙으면 산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
200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