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부자들

제6호 1993년 9월 15일
                                
                                                             김차중(HL1MGS)

  태초에 신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오직 인간만이 말[言]을 하고
  말을 적을 수 있게 창조해 주신 것은 이 세상이 아무리 살기 어렵다 해도
  너무나  값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햄 동호인들은 옛부터 인물을 평가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중에서 말[言]에
  관한 한 대단히 축복받은 부자들이다. 일단 마이크를 잡으면 남녀 노소 구별
  없이 언제 어디서 그리 많이도 장만했는지 그 구수하고 산뜻하며 예의 바르고
  박식한 말씨들이 아무리 퍼내고 또 나눠도 늘기는 할망정 줄지 않고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더욱이 우리 어린이 햄들의 풍부한 어휘와 바른 예절, 다채
  로운 재치로 해서 귀엽고 아주 완벽하게 교신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혀를 내두
  르게 하며, 미상불 보다 밝은 미래의 약속 같아서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가끔 예외도 있다.

  거칠고 무뚝뚝한 말씨가 불친절하고 교양 없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햄들의 수다에는 침묵이 금이라는 문자가 무색하다.
  이 '수다'라는 용어는 의미도 무게도 가치도 없을 때에 한해서 맞는 말이기에
  햄의 교신을 수다라고 하자면 다소의 무리가 있어 오히려 다행스럽다.

  햄의 교신이 좀더 유익하고 무게가 실리자면 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
  하다.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 독서와 사려 깊은 사고를 통해서 얻어
  지는 지식과 경험으로 다듬어지는 말솜씨는 천근의 무게와 인격이 실리게 된다.
  이런 말은 다 구슬 같아서 하루 종일 쏟아져 나와도 다 재미있고 즐겁고 유익
  하다. 무엇보다도 말을 말답게 하는 것은 진실이다. 말다운 말이 교환되는
  보기 좋은 교신의 이면은 햄들의 생활 자체가 겸손하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옥상의 안테나는 바로 이런 문화인이 사는 말 부자집 문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