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前 上書

윤 인 숙 (HL2KDN)

  엄마! 오늘은 또 무슨 생각을 하시며 천장을 바라보고 계셨나요? 어젯밤에는 편히 주무셨습니까? 어머니의 상황이 워낙 안 좋으시니, 저도 잘 있었다는 말씀은 드릴 여유가 없네요. 수도권 전철이 마치 당신 것인 양 전철비가 무료라며 날아다니듯 갈아타시며 저희들 집과 이모님 댁을 다니시더니만 얼마나 아프셨으면 불과 수개월 만에 그렇게 걷고 서기는커녕 바로 앉지도 못하게 되셨나요? 지금도 어머니의 작은 방에는 방금 전에 어머니가 앉아서 작업하신 듯한 재봉틀이 고개를 들고 보자기를 쓴 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네요. 그 옆에 있는 색색의 헝겊들도 빨리 오시라네요. 그리고 저의 집 냉장고 속에는 작년에 어머니가 해주신 고추장이 '너의 어머니의 정성, 그런데 이 고추장이 마지막이다'라고 하는 듯 아껴 먹게 하네요.

  어머니, 저는 시어머니가 계셔서 고추장, 된장 안해 주셔도 되는데 이렇게 자꾸 해주신 것이 마치 어머니가 다시는 못 해주실 것을 예견이라도 하신 듯하네요. 이 좋은 봄, 길가에는 나무마다 연록의 새잎이 돋아나요. 저는 어머니 생각을 하면 그것마저도 질투가 나네요.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지금도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은 퇴원도 하셨고 아들 집, 딸 집 다 들러 보시고는 마다하시고 어머니 집에 간병하는 분과 함께 계시니 조금 안정을 찾으셨나요?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던 그 여러 달 동안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자다가도 깨어서 어머니 생각하며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가끔은 어머니 간호에 마음 쓰며 주체할 수 없는 부담감에 피부 발진도 여러 번 났었어요. 그러나 그 괴로움이 어머니의 만 분의 일이나 했겠어요? 지난 월요일, 어머니께 갔을 때,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언니가 며칠 전에 갖다 드린 옷, 어머니가 처음 병원에 가실 때 입고 가셨던 그 옷을 붙들고 어머니가 삼십 분간이나 엉엉 우셨다고. 그 옷을 입고 병원에 처음 가실 때는 걸어서 들어갔는데 병원을 몇 번 옮기시고 결국은 지금처럼 혼자 힘으로 화장실 가시는 것이 소원이 되도록 나빠지셨으니 그 마음이 안 그러시겠어요? 그런데 왜 어머니 따로 저 따로 울어야 하는지요. 어머니 우시는 모습이 싫어서 제발 울지 마시라고 하고서는 돌아서선 제가 울고. 마음놓고 같이 실컷 울고도 싶은데 왜 눈물이 날 때마다 숨게 되는지요. 언젠가 저는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안 계셔도 내가 살 수 있을까 하고. 결혼한 후 이십여 년이 지났으므로 한편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가끔은 슬프고 간절하게 생각이 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어머니가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한없이 불쌍하여 마음이 아프지만 나 자신은 언젠가 어머니를 잃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십여 년 동안 혼자 사셔서인지 가끔은 노여움을 대단히 타시는 어머니, 그 신경질에 심기 불편해 하기도 했던 나는, 어느 주말 우리 집 가까운 동물원에 소풍 답사를 왔던 언니 부부와 함께 점심을 사 먹고 다녔지요. 그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는 엄마는 아픈데 놀러 다니는 것이 죄스러웠어요. 그런 얼마 후, 어머니께 그 말씀을 드렸지요. 그날 엄마의 전화를 받고서 혼날까 봐 걱정했다고. 그랬더니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왜, 그럴 리가 있나? 귀한 너희들을 놓고 가는 것만 해도 아까운데 혼을 내다니…' 하셨지요. 여러 달 병상에 계시면서 죽음에 대해서 수없이 생각하셨던 어머니. 무슨 생각인들 아니하셨겠어요? 그때서야 저는 깨달았어요. 나는 단지 어머니를 잃는 것일 뿐 주변의 가족이나 환경은 그대로인데,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을 놓는 것이구나! 잃는 것이구나! 그것도 한꺼번에. 편찮으실 때마다 힘이 되었을 듯한, 평소에도 더 자주 보고 싶어하시고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하시며 잔칫집에 가셔서는 얘가 큰아들, 쟤가 작은 딸 하시며 자랑하시던 그 사 남매와 며느리, 사위, 손주들을 한꺼번에 말이에요. 주변의 친지, 정든 이웃 아줌마, 수퍼의 친절한 새댁, 손때 묻은 아파트 베란다의 크고 작은 장 항아리와 화초, 부엌의 그릇 그릇들, 손질하시다 만 텃밭의 야채까지도…. 아! 그게 바로 안타깝다 못하여 아까운 것이구나! 그것이 죽어도 미련 없다 하시면서도 삶에 연연해 하신 이유였구나!

  어머니! 어머니는 그렇게 아파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셔서 올해도 또 이모들과 고추장, 된장을 담그셨네요. 제가 가는 날을 택하여 언니에게 보낼 김치도 말이에요. 그런 것들 이제 그만하시고 쉬세요. 고추장, 된장을 담그면서도 직접 못하시니 소금 넣는 양을 결정한다든지 하는 데 있어서도 이모들의 의견에 치여 마음에 차지 않으니 그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벌떡 일어 나서 직접 하시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시겠어요. 충분히 이해해요. 짜든 싱겁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알고 잘 먹을 게요. 그리고 저는 잘 보았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직접 담그시진 못하지만 우리를 위하여 장과 김치의 간을 보시며, 활기가 넘치도록 행복해 하시는 것을. 올해도 그 몸으로 끝까지 무엇인가 주시려고 하니 정말로 감사하며 무엇으로 그 은혜를 다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어머니로 말미암아 깨달은 것이 많아요. 우선 효도예요. 효도란 간단한 것인 줄 알았거든요.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기본이잖아요. 그러나 얼마나 힘 든 것인지 알았어요. 왜 그렇게 교과서에서부터, 예나 지금이나 강조하는지. 부모가 아프고 주변 상황이 힘들어지면 정말로 벗어나고 싶어요. 상황이 달라지기를 바라게 돼요. 그러나 점점 나빠지기가 쉽지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그 상황을 피하고자 하면 불효가 되고 달려들어서 감당해 내면 효가 되는 것이네요. 저뿐 아니라 우리 사 남매 모두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의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 많았어요. 밤새 괴로워하시다 새벽같이 전화하시곤 하던 어머니께 우리 마음 편치 않다고 참으시라 하고, 울지 마시라, 노여워 마시라, 가만히 계시라 하고 말이에요. 그러나 효도하도록 힘쓸 게요. 정말로 잘해 드리고 싶어요. 어머니는 병원에 계시는 동안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사실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어떻게 누구와 살아야 하나 생각하셨지요? 그것이 어머니께는 생존의 문제였지요.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선택의 문제였고요. 어머니가 제게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실천하겠어요. '너는 맏며느리이니까 시부모를 네가 잘 모셔라. 동서들에게 교대로 모시자거나 또 다른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꼭 잘해 드려라'라는 말씀을. 내게 이렇게도 중요한 어머니를 혹이나 올케가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섭섭하지요. 그런 만큼 저, 시부모께도 잘해 드릴 게요. 부모님 모시는 데에 시기가 어디 따로 있겠으며 조건이 어디 있겠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함께 하는 것이지요.

   제 머리카락도 이제 많이 희었지만 아직 어머니께는 배울 것이 많아요. 앞으로도 많이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그런 대로라도 오래 사세요.

  2002년 5월 5일 작은딸 올림

  위의 글은 정보통신부(구 체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에서 실시한 제3회 보은의 달 편지 쓰기 대회에서 입상한 윤인숙(HL2KDN) 국장의 글로 머리말에 대신합니다. －HL1MJ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