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제25호 1997년 1월 7일

							이기정(HL1MWN) 신부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런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라는 글을 곳곳에서 보았는데 누가 쓴 글인지 지금 생각해 보니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내용이 너무 좋아서 베껴 놓고 종종 인용하고만 
있습니다.

우리 햄들은 말을 하는 취미입니다.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취미 생활입니다. 말로써 하는 취미이기 때문입니다. 말로 천냥 빚도 갚습
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도 냅니다. 발도 날개도 없는 말을 천만리까지 
날려 보냅니다.

작년 가을 언젠가 투콜인 국장님이 CQ를 내시기에 너무 반갑고 신나고 놀라
서(?) 즉시 주파수를 맞추고 응신했습니다. 마침 다른 국장이 또 나왔습니
다. 셋이서 라운드 교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전 중이었고 여러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첫번째 말에서 저는 실수를 약간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너무 선배님을 만나는 바람에 응석 겸 왠지 말을 좀 귀엽고 
어리게 보이려는 정감에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어조만 그랬을 뿐입니다. 
"저의 Home QTH는…" 또는 "로저…"라든지 몇 마디 응석 어린 용어를 써 
가며 상대국을 매우 높여 주는 말과 감히 제가 응신해도 되느냐는 표현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소개하는 첫번의 인사가 '투메타'에서 무슨 영어를 
쓰느냐며 주의를 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햄이란 어떤 거고 모빌은 
자동차며 등 마치 교관이 졸병들에게 주의를 주듯 반말도 섞어 가며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대답을 짧게 하고 마이크를 다음 국장
님께 넘기고 다음 저를 부를 때에는 아예 응답을 안했습니다. 그냥 워치만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의 태도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르는 투콜이나 
고참 OM님이 CQ를 내면 절대로 안나가기로 했습니다. 야단맞고 주의 듣고 
지적받고하는 첫 인사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목소리가 듬직하고, 말을 이어 가는 기술이 너무 좋고, 기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시는 분위기를 느껴서 제가 생기를 얻는 것 같고, 등등." 
사탕 발린 말을 수시로 써 보기 시작했습니다. 상대국도 저를 칭찬하며 
기분 좋아 어쩔줄 모르며 얼굴이 붉게 달아 기쁨의 흥분을 느끼는 어감이 
흘러옵니다. 다음에 또 무슨 좋은 말을 해드리나 하며 구상에 구상을 곱해서
연구를 합니다. 자세히 듣습니다. 칭찬할 구실을 잡기 위해 열중합니다. 
말 속의 아지랑이 같은 분위기 속을 날아다닙니다. 그 말 속에서 상큼한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며 무조건 정다운 분으로 모시려는 심성을 총동원해 
봅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분은 저를 콜합니다. 응답을 하고 나가 
만나면 나를 여러 번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마음이 고우신
분, 애정이 있으신 분, 험악한 사회에서 보배 같으신 분, 등등." 같다며 
틀림없을 것으로 느껴진다고 하면 그 전파가 서울 상공을 샤워시키는 기분이
듭니다. 계속 그렇게 하기를 몇 개월 후 그는 교리반에 나오고 영세를 하고 
그렇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론으로 맺는 글을 장황히 안 쓰려는 심정도 그렇습니다. 현명하신 분이 
모두 햄님들이시고 척하면 착하는 똑소리 햄님들이시기에 말입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인내며 성의를 생각하면 국장님은 이 사회에서 확실히 
뛰어나신 분이시라 생각합니다. 맞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