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이들을 만나리라
김 광 석(HL2AWO)
지난 일요일 아침, 우리 아파트에는 여러 분의 햄들이 모였다. 내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7-element Yagi 안테나를 세우기 위해 다섯 분의 햄들이 오신 것이다.
무척 커다란 안테나를 각각 맡아서 조립하고 타워에 올려 세우는데 하루 종일
시간이 걸렸다. 경험과 기술이 많은 가톨릭아마추어무선사회의 OM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파아란 하늘 높이 안테나를 세우며 수고를 하였다. 나는 줄곧 자리를
함께 하면서 이 분들의 도우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여러 가지 감회에 젖어
있었다. 자신의 안테나도 아닌 다른 사람의 안테나를 저렇게도 열심히 조립하고
세워 주는 따뜻한 마음들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원하는 안테나를 직접 내 손
으로 세울 수는 없는 나로서는 그저 감사와 이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르코니회의 여러분들은
나의 안테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안테나 작업에서도 바쁜 시간을 내어 수고
를 아끼지 않고 있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작업은 할 수 없지만 안테나 작업때
총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나의 참여를 반겨주고 계신 것에 감사한다. 나는 옥상에
서 굳건히 세워져 있는 타워를 만져 본다. 이제 저 하늘 멀리 내가 외치는 목소
리가 전파를 타고 가겠지. 가슴 뿌듯하게 다가 오는 기쁨과 함께 지나 간 많은
시간들이 머리에 스쳐 간다. 나는 1976년 2월에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응용통계
학과를 졸업하고 계속 공부를 하기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역시 연세대학교
대학원 응용통계학과에 입학하였다. 앞으로 학계로의 꿈을 가지고 있던 나는 열심
히 공부를 하였다. 과의 조교와 세계은행(I.B.R.D.)의 어시스턴트(Assisant)로
의 활동등 주위로부터 자신감 넘치고 전도가 밝다고 칭찬을 받았던 학생이었다.
1977년 10월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석사논문을 쓰고 있던중 갑자기 눈앞이
흐려져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포도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가 어려울 수도
있는 눈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절망과 좌절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투병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는 오직 빨리 다시 정상적인 시력을 되찾아
학업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 전부 였다. 그러나 조금씩 회복되는가 하다가 다시
악화를 거듭하여 급기야는 1982년 10월에 완전 실명하게 되었다. 실명의 과정에서
겪었던 심적인 고통과 좌절은 이루말할 수 없지만 나를 다시 이겨내고 출발할
수 있게 한 것은 가톨릭 신앙과 현실을 인정하려는 노력에서 인것으로 생각한다.
친구들이 하나 둘 유학을 떠나 가고 나의 눈은 점점 흐려져 갈 때 나는 이제
패배했다라는 좌절밖에 없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다시는 내가 원하는 학계의
길을 이룰 수도 없고 삶의 존재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죽음도 시도하려 하
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까지 노력
해 온 내가 앞으로의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내 볼려는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
겠는가?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고통보다는 적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해온 삶이
아깝지도 않은가?"라고 스스로 수없이 반문해 보았다. 1982년 6월 그나마 조금
보고 있는 시력이 언제 완전 실명할 지 모른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다. 나는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나는 시각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빠를수록 나에 대한 현실을 인정
하고 새로운 길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빠를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받아들이
는 것은 쉽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검은 안경과 흰지팡이를 짚고 있는 맹인들의
모습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결코 그런 모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1982년 여름 어느날 나는 서울 회현동의 지저분하고 좁은
골목길을 올라 작고 남루한 가톨릭맹인선교회라는 사무실을 찾았다. 점자를 배우
고 점자 성경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 그 날부터 많은 맹인들을 만나고 가톨릭
맹인선교회부설 가톨릭녹음도서관의 일을 맡아 함께 봉사를 하였다. 그당시
나는 약간의 시력이 남아 있어서 맹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루한 의복과
흰지팡이를 짚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주었다. 바로 실명의
고통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 저분들과 같은 일이고 나는 그래도 저 분들보다는
좀 더 많은 교육과 좋은 환경에서 살아 왔지 않았나 라는 위로에 맹인들을 위한
일에 함께 동참하였다. 1982년 10월에 나는 가톨릭녹음도서관 초대 관장이 되었
다. 도서관은 전국에 있는 맹인들에게 낭독봉사를 통해책을 녹음 하여 우편을
통해 보내 주는 맹인에게는 눈과 같은 역활을 하는 곳이었다. 많은 업무와 새로
운 적응으로 여념이없었지만 과로로 인하였는지 그 해 10월말 갑자기 완전실명
하게 되었다. 조금 보는 것과 완전실명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발자욱도 꼼짝할 수 없었다. 얼마전 맹인들이 흰지팡이를 짚고 다니
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으며 용기를 가지고 사무실까지 어
둠속에 지팡이를 짚고 갔다. 온몸에 식은 땀이 났다. 긴장은 이루말할 수 없었
다. 금방 커다란 바위가 내 앞으로 달려 오는 것만 같았다. 한 번은 지팡이를
짚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 심한 충격이 있었다.
무척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팡이를 짚다가 그만 전봇대에 부딪친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나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전봇대를 힘껏 몇 번이
나 내리쳤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가려고 지팡이를 짚으려 하다 보니 잘 짚어
지지 않았다. 지팡이를 들어 만져 보니 완전히 휘어 있었다. 길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나는 주저 앉아 그 지팡이를 다시 손으로 펴느라 한참동안이나 안간
힘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나의 고통을 받아 들이는데 있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은 것이었다.
내가 아마추어무선을 직접 알게 된 계기는 우연한 일이었다. 가톨릭녹음도서
관에서 봉사하던 한 봉사자의 권유에서였다. 그 봉사자는 이미 아마추어무선기
사 자격을 갖고 있던 주부였는데 내가 햄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는 할 수 있
는 용기를 주고 아울러 주변의 많은 도움을 연결해 주셔서 1983년 9월에 3급전
화급 햄 자격고시에 응시하게 되었다. 물론 그 때는 맹인이 시험에 응시할 수도
없었고 개국을 한 맹인햄이 한 사람도 없었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강창균
부이사장님(HL1CR)의 많은 도우심과 여러분의 협조로 시험을 보았고 합격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20명의 맹인들이 응시하엿고 그 중 17명이 합격하였다. 그리고
나는 1984년 4월 23일에 호출부호 HL2AWO로 개국하였다.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이
햄할동을 시작하는 첫 맹인햄이 된것이었다. 허가 신청을 하고 가허가가 나오게
되기까지 2달이상이 걸렸다. 가허가가 나오지 않아 알아 보니 맹인이 어떻게 교
신을 할 수 있을까 무척 우려를 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당시
체신부 허가 담당자를 나의 도서관으로 오시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녹음실에서
온갖 녹음장비를 직접 조작하며 편집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무척 놀랐다.
그 복잡한 믹서기(mIXER)와 녹음장비를 조작하는 것을 보고 며칠후에 가허가를
내 주었다. 준공검사도 검사과장이 직접 방문하여 실시하였다. 나는 그 분들의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린다. 물론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 것이 첫 ]
문을 열게 된 계기라고 생각한다. 1984년 4월 23일 부산에 있는 어느 햄과 첫
교신을 한 감동은 잊을 수 없다. 빈약한 출력의 헨트론으로 나눈 교신이었지만
그 흥분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이후 무선기는 나의 친구이자 따뜻한 만남을
이어 주는 다리였다. 1983년 10월 맹인들의 햄활동과 교육을 위해 한국맹인
아마추어무선사회를 며러 명의 맹인들과 함께 창립하였다. 나는 초대 회장이
되어 많은 맹인들에게 햄강습을 실시하고 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개국한
이후 아마도 전국에 걸쳐 250여명에 이른 맹인들이 자격을 취득하고 100여명의
맹인햄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3급 전화급에 그치지 않고 좀더 높은
자격에 도전하고 싶었다. 1986년 아마추어무선기사 2급 시험에 응시하였다.
이 때에도 체신부 담당자의 반대가 있었다. 관계 법령을 만들어야 하고 특별 전형
을 해야 하므로 응시하지 않앗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서
를 접수하고 시험 준비를 하던 나는 후회를 하였다.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는
지 그리고 불합격하면 얼마나 창피할까하는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다. 나는 다행
히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CW 실기시험에도 합격하였다. 문제는 점자로 출제해
주었지만 CW에서는 일반인과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물론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점자 타자기로 수신을 받아 썼고 송신은 시험관이 불러주는 문제를 듣고 송신하
였다. 그 때 나는 점자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시험보는 동안 긴장으로 이마에
는 구슬땀이 흘렀다. 합격하였다. 실명이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합격은 나에게
하면 된다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두달동안이나 단파대와 투미터를 통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CW 지도를 해주신 함영만OM(HL2AKB)께 감사드린다. 1989년
에 다시 1급 기사 자격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모든 햄
자격시험에 합격하게 된 첫 경우였으며 햄에 대한 모든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
었다. 그 동안 도와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의 도우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는 1985년 7월에 몇몇 가톨릭신자 햄들과 함께 가톨릭아마추어무선
사회(일명 마르코니회)를 창립하고 많은 가톨릭신자들을 위한 햄활동과 햄교육,
전교할동 위해 노력하였다. 1986년부터는 전파를 통해 ROUND-TABLE QSO를 하는
마르코니NET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 밤 10시에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명의
햄들이 대화를 나누는 활동도 하고 있다. 8년에 걸쳐 지속되어 온 마르코니NET
400회를 맞이 하는 동안 수많은 햄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건전한 햄 생활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 나는 마르코니NET를 진행할 때
Controller를 하고 있다. 대화를 진행하고 순서를 정해 주고 사회도 보아야
하며 145메가헬츠의 전파를 21메가헬츠에도 중계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혼동도 되었지만 익숙해 진 이후에는 기록하지
않고도 20여명에 가까운 햄들을 Control할 수 있게 되었다. NET를 이어 가면서
참으로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따뜻하고 유익한 대ㅘ를 나눌 수 있었
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나라와 많은 햄들과 교신을 나누었고 기쁜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다. DX교신에도 전념하여 세계 곳곳의 많은 국들과도 교신하였다.
DX뿐만 아니라 먼 나라와 regchew를 즐길 때 참으로 햄에 큰 묘미를 느낀다.
특히 시각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장애가 없는 일반인에 비해 불편이 없을 정도의
취미와 활동이기에 더더욱 만족하고 있다. 나는 저 파아란 하늘 멀리 지구
저편까지 힘껏 외치리라.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에 모든 이들을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