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38호 1999년 3월 5일

							회장 김광석(HL2AWO)

여러 해 전의 일이었습니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찌푸린 겨울 날씨
에 잘 아는 여류 화가이신 나희균 선생님과 함께 전주 중바우산에 있는 루트
가르다 성지에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달리는 즐거운 기분에 잠깐 대화를 나누는가 싶었는데 차는 벌써 전주에 도
착해 있었습니다. 성지에 가기 위해 그리 높지 않은 중바우산에 오르기 시작
했습니다. 나지막한 산이었고 바위가 많았기 때문에 중바우산이라고 불리고 
있었지요. 산을 오르는 길은 잘 다져져 있었고 나 선생님과 함께 오르는 산
길은 걷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간쯤 오르는데 머리 위로 무언가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내리나 보네요." 나는 하늘을 올려 보며
말했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나 선생님은 대답했습니다. 조금씩 
더 올라가니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겨울철이
었고 눈이 내리는 쌀쌀한 날씨때문에 산을 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우리가 산길을 걸어 올라갈 때 주위는 너무나도 고요했습니다. 다만 걷고 
있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나는 조용히
걸어 올라가며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나의 귓가에는 "사악, 사
악, 사악" 하고 무엇인가가 나무들 위로 내려 앉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
씩 그리고 더욱 자주 그 소리는 들려 왔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가벼운 물체
들이 온 산의 나무 위에 살며시 쌓이는 소리였습니다. 바로 눈이 내리는 소
리였습니다. 너무도 선명히 들려 왔습니다. 내가 나 선생님께 "눈 내리는 소
리가 들리네요!" 하고 말하자 선생님은 "무슨 소리예요?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솔잎 위로 내리는 사악
사악하는 눈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아니오. 그저 눈만 내리는 것이 
보일 뿐이에요." 나는 그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듣고 있는 이 눈 내
리는 소리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구나 하면서 분명 이 조용하면서 아득
하고 부드럽게 내리는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나 선생님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 눈으로 보이는 사물로 인해 그 아름다운 소
리를 들을 수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육적인 시각 
이상으로 하늘에서 부드럽게 내려앉는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많은 상상력을 전해 줍니다. 우리 아마추어 무선사
들은 소리를 들으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취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 만나는 사람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느끼고 그 정을 전해 듣
습니다. 따뜻하고 정감이 가득한 소리를 들으며 이 취미에 감사합니다. 더욱
 우리가 나누는 "마르코니 네트"는 사랑이 가득한 나눔의 소리입니다. 아무
리 햄들이 많이 늘어나서 혼탁해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나누는 고운 소리를 
통해 기쁨은 함께 나누고 슬픔은 서로 위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
금도 나에게는 그 아름다운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듯 여러분의 사랑의 모습
이 들립니다. ＊